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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4 16:41

상상하는게 왜 수준 낮은 건가요?

난 글쓰는 데에 뛰어난 소질은 없지만 글쓰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기도, 좋아하기도 하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 특별활동이나 방과후 활동으로 글쓰기반에 1년가량 들었던 추억도 있었다.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때 일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특별활동으로 글쓰기 반에 들었다. 그 첫시간에 했던 것이 상상하여 글쓰기였다.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주입식 교육의 영향을 덜 받았기에 지금과 다르게(지금은 아주 고역이다) 상상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게다가 6학년 학생에게는 시나 논설문같은 내용상 딱딱하거나 형식의 제약 있는 글(심지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나서도 시는 형식이라는 틀때문에 쓰기가 부담스럽다, 게다가 나만 해당되는건 아니다)보다는 자유롭게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쓸 수 있는 산문, 그것도 주제의 제약이 없이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을 쓰는 것이 훨씬 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나는 첫시간 이후 우리는 상상하여 글쓰기가 아닌 다른 글쓰기(가령 논설문이라던지 시 등등)를 했었다. 첫시간 이후의 글쓰기는 어렵긴해도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 시간이 되었을 때 일명 자유시간이 주어졌든데 선생님께선 우리들에게 어떤 글을 쓰고 싶냐고 물으셨다. 그때 난 큰소리로 상상하여 글쓰기요!라고 외쳤다. 그런데 나의 대답에 선생님께서는 좀 한심하다는 듯이 "그런건 수준이 낮은 거라서...."라며 말을 얼버무리시더니 다른 주제로 글을 쓰자고 하셨다.

 

사실 그 때는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내가 초등학교 고참이라는 자부심때문에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을 땐 '나 너무 수준에 안맞게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얼굴이 빨게졌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나도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연필을 들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교내 백일장 대회에서 상도 받고 입시 논술도 나쁘지 않은 실력이라고 칭찬 받았지만(재수하는 마당에 자랑할려고 쓰는건 아니니 오해마시길) 막상 논리정연하고 독해력을 요하는 논술 문제와 글에서 벗어나 그냥 사람사는 이야기, 하다못해 진부하다면 진부한 사랑이야기조차 쓰려고 했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고싶은 주제는 있지만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어 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그 때 생각했다. 상상하는게 왜 수준 낮은거지?

 

사람들은 논리정연하고 사회적인 내용들을 담고 풀어내는 글들이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환타지 소설이나 무협소설, 순정소설,순정만화 같은건 읽을 필요없다고. 차라리 그 시간에 시사저널이나 신문, 뉴스나 보라고. 아님 언어영역 시험에 나오는 최인훈의 광장이나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윤동주의 서시를 읽으라고. 그런데 그거 아는가? 언어영역 시험에서 자주 출제된다는 소설이나 시조차도 작가의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는걸. 만약 그들에게 나처럼 주제는 있으나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어 나가야 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음직한 허구를 만들어낼 상상력도 없었다면 언어영역 시험지에서 만날 수 있었을까?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창의적인 인재를 필요로 한다고 강조하고 대학에서는 입학사정관제를 시행하고 기업에서도 창의적인 인재를 찾기 위해 합숙 면접이니 뭐니 여러가지 방도를 내놓는다. 창의성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여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상상을 하는 것 자체를 하찮게 보는 풍조에 과연 창의적인 인재가 나올 수 있을까?

 

현대문명의 결과물들 중 창의적이라고 평가받고 역사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들의 대부분은 결국 상상의 결과문들이다.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하지 않았다면 비행기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테고 아인슈타인의 호기심과 상상력이 키워지지 않았다면 상대성이론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에디슨은 전구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주여행도 꿈꾸고 상상하지 않았다면 시도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란 걸 생각한다면 현대사회에서 상상할 수 있다는 것=경쟁력이라는 공식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자녀들이 환타지 소설이나 무협지를 본다고 혹은 시덥지 않은 인터넷 소설을 쓰느라 시간을 보낸다고 혼내는 부모님들께 부탁하고 싶은게 있다. 자녀들이 무협지와 환타지 소설을 읽고 인터넷 소설을 쓰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혼내지 않길 바란다. 그들은 적어도 나에겐 없는, 아주 부러워할만 한 재능, 상상력이 있다는 것이다. 의외로 시덥지 않다고 욕하는 인터넷 소설도 작정하고 쓰려면 쉽지 않은게 사실이고 무협지를 읽으면서 액션을 떠올리려면 의외로 힘들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처럼 분석하려드는 학생들보단 당신의 자녀들의 언어영역 점수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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